[브랜드역사] GT-R, 포르쉐를 꺽어라!

기사입력 2012.11.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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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GT-R은 포르쉐를 꺽기 위해 만들어진 차다. 등장하자마자 기세등등하게 뉘르부르그링 랩타임을 내걸고 포르쉐에게 도전장을 보냈다. 포르쉐 팬이라면  ´어디 감히..´하며 혀를 찰만하다. 하지만 GT-R이 포르쉐를 겨냥한 것은 난데없는 블랙 마케팅이 아니다. GT-R의 뿌리는 자동차 경주에 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래전부터다. 1960년대부터 포르쉐에게 칼을 갈아왔던 역사가 있다.
 
닛산 스카이라인은 원래 프린스 자동차의 스카이라인이었다.  프린스 자동차는 항공 기술자들이 세운 조그만 기업이었다. 처음에는 전기차를 만들었지만 시기상조였고, 게다가 배터리에 필요한 납 가격이 올라 개발에 더욱 큰 난관을 가져왔다. 결국, 그들은 내연기관 자동차로 방향을 틀었다.
 
1957년식 프린스 스카이라인. 당시 일본 승용차 중에서 최고 배기량을 자랑하는 중형차였다.
 
그들은 중형 세단인 스카이라인을 1957년에 출시한다. 직렬 4기통 1.5L 엔진을 얹었고 당시 일본 승용차 중에서 최고 배기량을 자랑했다. 성능에 자신이 있던 프린스 자동차는 마케팅의 일환으로 일본 그랑프리를 선택했다. 처음 열리는 일본 그랑프리에서 승리해 자동차의 성능을 널리 알리겠다는 계획이었다. 항공 기술자 출신인 그들의 기술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1963년 제 1회 일본 그랑프리를 앞두고, 대회에 참가하는 자동차 메이커들은 순정차로 경주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막상 경주에 나서자 각 자동차 메이커들은 개조차들을 출전시켰고 성능 개조를 하지 않은 차량은 프린스 자동차의 스카이라인 GT밖에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순진한 공학자들의 참패였다. 게다가 패배로 인해 프린스 스카이라인에 대한 인식 또한 나빠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운한 소식도 흘러나왔다. 1964년, 일본정부가 자동차 회사들을 강제합병 할 것이란 소문이 흘렀다. 수입차 시장 개방을 앞두고 자국 자동차 회사의 경쟁력을 키우겠단 것이었다. 만약, 일본정부가 작은 회사를 큰 회사에 흡수시켜 덩치 키우기에 나선다면, 프린스 자동차의 미래는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살아남기 위해선 어떻게든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둬야했다. 프린스 자동차의 엔지니어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목표는 당연했다. 일본 그랑프리에서 승리해 작년의 설욕을 갚고 성공하겠다는 것.
 
스카이라인 2000GT S54. 스카이라인을 바탕으로 개조한 경주차다. 위 사진과 비교해보면, 직렬 6기통을 얹으며 앞쪽이 길어진 것을 볼 수 있다.
 
프린스자동차는 스카이라인을 기반으로 경주차를 만들기 위한 성능 개선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의 직렬 4기통 엔진 대신 직렬 6기통 엔진을 얹었다. 배기량을 높이고, 독하게 출력을 쥐어짰다. 최고출력 125마력을 얻었다. 그들의 각오는 매서웠다. 출력을 높이기 위해 직렬 6기통 엔진을 얹는 과정에서 프레임을 잘라 엔진 룸까지 늘릴 정도였다. 차의 이름은 스카이라인 2000GT S54.  
 
1964년, 제 2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렸다. 그러나 예상외의 상황이 벌어졌다. 자동차 제조사가 아닌 개인팀에서 포르쉐 904를 들여와 대회에 참가한 것이다. 스카이라인 2000GT는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함께 힘있게 달려나갔다. 하지만 포르쉐 904는 급이 달랐다. 차체는 바닥에 붙어있듯 납작히 엎드렸고, 최고출력 198마력의 직렬 4기통 2.0L 엔진은 어디까지라도 뛰쳐나갈 듯한 기세로 가속하며 진짜 경주차의 자태를 과시했다.
 
 
포르쉐 904. 당시 차원이 다른 성능을 과시했다.
 
 스카이라인 2000GT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상대였다. 결국 스카이라인 2000GT는 모든 일본 자동차 회사의 차를 앞질러 달렸지만 포르쉐에게는 완전히 졌다. 포르쉐의 꽁무니만 봐야 했다. 경기장에는 ´일본차는 수입차를 이길 수 없다´는 자조감이 흘렀다. 프린스 자동차 기술자들은 어떻게든 수입차라는 벽을 깨고 싶었다. 넘을 수 없는 상대라고 인정하기에는 이들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더불어, 회사의 존립을 위해서는 어떻게든 포르쉐를 이겨야했다.
 
하지만, 1965년 그랑프리는 취소됐다. 게다가 프린스 자동차는 1966년 8월자로 닛산에 흡수합병이 결정됐다. 망연자실할 일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포르쉐를 앞지르기 위한 기술자들의 열정은 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시 한번 의지를 불태웠다. 흡수합병 되기 전 단 한번의 기회가 남았다. 1966년 열리는 제 3회 일본 그랑프리가 프린스 자동차의 마지막 복수의 기회였다. 목표는 포르쉐 타도다. 당시 포르쉐 904의 최고출력은 180마력. 차체 무게는 700kg에 가까웠다. 스투트가르트의 명장들이 만든 차체는 당시 기술의 총아였다.
 
포르쉐 904를 앞서기 위해서는 개선 정도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경주차 제작이 필요했다. 제작진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엔진출력의 개선과 차체무게의 절감이다. 포르쉐 904를 뛰어넘는 출력의 엔진을 만들어, 그 이상의 운동 성능을 발휘할 수 있는 차체에 싣는 것이었다. 그들은 스카이라인 2000GT S54에 썼던 직렬 6기통 엔진을 바탕으로 대폭적인 개선작업에 들어갔다.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해 윤활유의 공급방식을 드라이 섬프로 바꿨다. 스케벤징 펌프를 이용해 실린더에 윤활유를 쏟아 붓는 것이다. 또한 출력을 높이기 위해 여러 시도를 거쳤다.
 
자연흡기 엔진으로 출력을 크게 높이기는 쉽지 않다. 엔진 헤드를 DOHC 방식으로 바꿔 고회전을 가능하게 했다. 모든 부품들의 무게를 균일하게 맞추는 질량가공, 카뷰레터 수 늘리기 등 출력을 높이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결국 그들의 엔진은 목표치를 한참 뛰어넘은 225마력을 기록했다. 직렬 6기통 2.0L 자연흡기 엔진으로는 놀라운 성과였다. (정식 레이스에서는 200마력/8000RPM으로 조정됐다.)
 
엔진은 성공했지만, 문제는 차체였다. 포르쉐에 비하면 프린스 자동차의 차체개발 경험은 한참 모자랐다. 게다가 스포츠카로 잔뼈가 굵은 포르쉐에 비하면, 그들은 세단만 만들어 본 수준이었다. 1년 전 레이스카로 썼던 스카이라인 2000GT S54의 무게는 1070KG다. 새로 만드는 차체는 700KG 이하를 달성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차이다. 해결책은 하나밖에 없었다. 소재를 바꿔 무거운 강철 대신 가벼운 알루미늄으로 새로운 차체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알루미늄 차체는 강철에 비해 다루기 까다로웠다. 그래서 항공기 용접을 담당하던 숙련된 베테랑들이 도전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목표를 훌쩍 뛰어넘은 660KG을 달성했다.
 
프린스 R380. 포르쉐 904에 대적하기 위해 만든, 프린스 자동차의 기술력을 상징하는 존재다. 
 
이 차의 이름은 프린스 포르쉐 904보다 더 강력했고 더 가벼웠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였다. 더 뛰어난 성능의 신형 모델 포르쉐 906이 제 3회 일본 그랑프리에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프린스 자동차의 기술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차는 이미 준비됐다. 이젠 사람이 최선을 다 하는 것밖에 남은 것은 없었다. 그들은 마음을 다잡고 타이어 교체와 주유 연습, 레이스 작전 등을 착실히 준비하며 대회를 기다렸다.
 
1966년 5월 13일, 제 3회 일본 그랑프리가 열렸다. 일본차 제조사에겐 재앙이나 다름없는 상황이 펼쳐졌다. 포르쉐, 재규어, 로터스, 포드 등 유명한 수입차들이 참전했다. 당시 고성능으로 이름을 떨치던 차들과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후지 스피드웨이를 60바퀴 도는 장거리 경주라 부담이 컸다.
 
처음부터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프린스 R380이 처음부터 선두로 올라섰다. 그 뒤엔 포르쉐 906이 바짝 쫒아오고 있었다.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R380과 906의 팽팽한 기싸움이 펼쳐졌다. 결국 포르쉐 906이 24바퀴째에서 프린스 R380을 추월했다. 하지만 거리는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R380의 추격은 계속 이어졌다. 31바퀴째 포르쉐 906이 급유를 위해 멈춰서며 프린스 R380이 다시 선두로 올라섰다. 포르쉐 906의 급유에 걸린 시간은 50초쯤 됐다. 거리는 제법 벌어졌지만, 프린스 R380 또한 급유가 필요했다. 앞질렀지만 급유를 하면 비등하거나 뒤쳐질 수 있는 상황이다.
 
포르쉐 906. 904의 후속 모델로 자동차 경주를 위해 탄생한 빈틈없는 성능을 과시했다. 
 
36바퀴째, 프린스 R380이 급유를 시작했다. 포르쉐 906의 추격이 시작됐지만, 프린스 R380은 단 15초 만에 급유를 끝내고 나왔다. 포르쉐 906에 비해 35초나 짧았다. 프린스 자동차의 아이디어가 빛을 발했다. 연료통을 높은 곳에 놓아두어 연료가 떨어지는 속도를 높여 단번에 주유를 마쳤다. 줄어들던 격차는 멈췄고, 다시 프린스 R380은 간격을 벌리기 시작했다.
 
이후 프린스 R380은 선두를 유지하며 달렸다. 47바퀴째 포르쉐 906이 잘못 미끄러져 중도 탈락했고, 이후로는 R380의 독무대였다. 60바퀴째, 프린스 R380이 가장 먼저 결승점을 통과했다. 완벽한 우승이었다. 간절히 바라던 우승을 이뤘고 절대 넘어설 수 없을 것 같던 포르쉐를 넘어섰다. 우승에 대한 열망, 포르쉐에 대한 설욕은 이렇게 끝났다.
 
이윽고 그해 8월 1일. 프린스 자동차가 닛산 자동차에 흡수 합병되는 날이었다. 프린스 자동차로는 걱정이 컸다. 과연 거대 회사인 닛산에서 자신들은 어찌되는 것일지 고민이 앞섰다. 하지만 닛산이 먼저 부탁을 청했다. 프린스 자동차의 기술을 전수해달라는 것이었다.
 
스카이라인은 다시 닛산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들은 스카이라인을 바탕으로 그들의 기술을 집약한 자동차를 만들어냈다. 레이스에서 태어난 최고 출력 160마력의 직렬 6기통 2.0L 엔진을 얹고 도로와 서킷을 휘몰아쳤다. 압도적인 속도를 냈고, 레이스에서는 49연승의 거대한 성과를 거두며 차신(車神)으로 등극했다. 스카이라인 GT-R의 시작이었다. 
 
스카이라인 GT-R 1세대. 상자형의 차체로 ´하코스카´란 애칭을 얻었다. 하코스카는 일본어로 상자를 뜻하는 ´하코´와 스카이라인의 ´스카´를 더한 합성어다.
 
                                                                                                글 모토야 편집부 I 사진 닛산, 포르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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